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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게 산다는 것] 독서후기_제1장 잃어버린 존엄을 생각하다

샤이호빗 2025. 8. 28. 13:34

'우리는 여전히 존엄하게 살고 있을까'

[존엄하게 산다는 것] 도서 외관과 도입문구

 

제목: 존엄하게 산다는 것

작가: 게랄트 위터

 

1장에서 작가는 '존엄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 몇 가지 계기를 이야기한다.

 

그 첫 번째는 어린 시절 작가가 살던 마을에서 만났던 한 노신사와의 만남이었다.

노신사는 길을 물었고, 친구들과 함께 버스정류장까지 길을 안내하는 동안, 노 신사는 길가에 핀 모든 종류의 꽃과 식물들 그리고 새와 동물 같은 모든 생명에 대해서 하나하나 흥미진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친구들과 어린 날의 작가는 마치 그 설명 속에서  탐험을 하는 것 같은 흥분된 마음으로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노신사는 다른 어른들처럼 식물의 용도와 동물의 목적을 설명해 준 것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생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단지 그 아름다움에만 집중하여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후로도 이 날 느낀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레이철 카슨의 책 '침묵의 봄'을 이야기한다. 

[비행기에서 숲으로 약품이 살포되는 사진] 본문 中 발췌

 

'침묵의 봄'은 1962년에 쓰였는데, DDT(디클로로 디페닐 트리클로로에 탄)라는 살충제 사용이 지구의 생명을 파괴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 책이다. 

어린 시절 작가가 친구들과 함께 경험한 노신사에게서 느낀 자연과 생명에 관한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 책과 맞닿아 있다. 

 

세 번째로는 인간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모든 것이 수치화되어가고, 그 수치와 통계 안에서 더 이상의 수치적 최적화가 불가능한 인간들은 무익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표현은 꽤 인상적이다.

 

그리고는 디지털네트워크 발전의 기술과 함께 나도 모르게 기만당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1초도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 스마트폰과, 늘 광고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하다'를 강요하고 있는 기업들, 끊임없이 체험을 권하고 기분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매체들. 좋든 싫든 늘 듣게 되는 수많은 정보들. 

작가는 이를 [기만적인 문화]라고 표현했고 이런 기만적인 문화를 소비하는 주체는 우리인데, 우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존엄하는 사는 것. 제1장 잃어버린 존엄을 생각하다 中]

 

다섯 번째로는 '이익극대화'라는 함정에 빠져 점점 그 존엄을 잃어가는 인간에 대해서 한번 더 이야기한다.

과거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독에서는 병원의 이윤추구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은 돈이니 수술 후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환자가 있더라도 다음 환자에게 병실침대를 곧바로 팔아버리는 실태라고 꼬집는다.

 

작가는 시간을 돈으로 따지는 방식의 의료 행위는 그 자체로 인간의 존엄에 반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한술 더 떠서 이제 세상은 지치지 않고 더 많은 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효율적이고 지치지 않는 노동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발명품들은 누군가의 직업을 빼앗는 동시에 환자는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권리마저 빼앗는 셈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제는 교육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배움'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의무에 지나지 않는 무언가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본문의 문구를 잠시 인용하면,

" 사는 동안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인간은 이렇게 순식간에 특정 시스템에 속한 대상, 지배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자기 존엄성을 스스로 깨우칠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과 배움이라는 행위에 대한 존엄이 사라졌다는 작가의 말은 아마 누구라도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정해진 자리 정해진 수업시간, 앞시간에 배운 내용이 미쳐 다 지식과 경험이 되기도 전에 다음 수업이 시작돼 버린다. 늘 그렇게 지내왔기 때문에 이런 방식에 문제의식을 가져보지 못했고, 내 아이 역시 나와 같은 교육을 받고 있다. 생각이 많아지는 도입이다... 들어가 보자! 작가의 논제 속으로.

 

작가는 이렇게 환경과 교육, 의학과 과학기술이 만든 현대인의 삶이라는 것이, 우리를 어떤 결과로 몰아가고 있는지 첫 장에서 이야기한다.

작가는 누군가 생명의 다양성을 파괴 하거나, 인간 내면의 다양성 즉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잠재력을 억누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이 자신이 생각하는 존엄이라는 가치에 부합하는지를 돌아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과 행동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에서 자문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내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에 모순될 경우,

내면에 일어나는 동요를 느껴봐야 한다는 말이다."

[존엄하게 사는 것. 제1장 잃어버린 존엄을 생각하다 中]

 

이렇게 1장의 내용을 대략 정리해 보았다.

신경생물학자인 작가는 자연과 인간을 달리 보지 않는 것 같다. 당근은 키워서 채소로 먹는 것이고, 젖소는 키워서 우유를 마시고.. 등의 목적형 아름다움과 쓸모가 아닌 있는 그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훼손되어 가는 자연과 점점 쓸모와 가치를 잃어가는 인간의 노동력.

이런 세상에 적합한 인간을 길러내기 위한 획일적이고 어찌 보면 강압적인 우리의 교육.

자본시장의 끊임없고 집요한 마케팅 속에서, 우리 내면의 중심을 잡고 이 기만적인 문화를 똑바로 올바르게 소비하고 우리의 존엄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는 정리해 본다.